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 (문단 편집) == 성향 == 케인스는 오늘날 좌우 [[리버럴]] 진영이나 [[사민주의]]까지 포함하는 다수 진보 세력들의 경제 관념에 큰 영향을 끼쳤고, 정치적으로도 당시 [[보수당(영국)|영국 보수당]]에 대립하던 [[자유당(영국)|영국 자유당]]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던 사람이었으며, 성적으로는 양성애자기도 했다. 물론 그는 [[새자유주의]]자였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선 매우 비판적이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분파일 뿐이긴 하다. 당장 당시부터도 좌파 [[아나키즘|아나키스트]]나 [[좌파 자유지상주의| 좌파 자유지상주의자]] 등은 마르크스주의나 이에 기반하여 나온 배타/폭력적 [[공산주의]]에 반대했다. 여기서 정치적으로 유의미하게 성장한 세력 중 하나가 [[사회민주주의]] 그룹. 실제 사민주의자들은 뉴딜 이후 케인즈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 [[자본론]]에 대한 저의 생각은 [[쿠란]]에 대한 생각과 같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책을 시대의 반석처럼 여기며 영감을 얻고 있는 사람들 중에 멍청이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런 책이 왜 이같은 반향을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음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적 논쟁거리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해 보입니다. 쿠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이런 책들이 불같은 기세로 세계의 절반을 휩쓸 수 있었을까요?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이해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요. [[버나드 쇼|선생님]]은 자본론과 쿠란을 둘 다 믿으십니까? 아니면 자본론만 믿으십니까? 하지만 '''자본론의 사회학적 가치가 어떻든간에, 경제학적 가치가 0이라는 것은 확신합니다.'''[* 케인스에게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권한 [[버나드 쇼]]에게 보낸 답장 중, 1934년.] 그는 1930년대 [[파시즘]]이 대두하자 마치 이에 대한 대항마인양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모였다는 대학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전쟁·파시즘·실업의 치유책으로 환영받는 현실을 개탄했다. 당연히 [[러시아 혁명]]도 좋게 보지 않았는데, 그는 혁명을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첫째, 기존의 질서는 개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량한 것이 아니며, 둘째, 혁명이 가져다 줄 훗날의 체제가 현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없고, 셋째, 설사 새로운 체제가 전복된 그것에 비해 낫다는 것이 증명됐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혁명 과정에서 치르게 될 희생을 보상할 만한 것인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 그는 자유방임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 모두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체제를 동일시하고 자본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련 경제학자들 앞에선 집단주의적 기조를 따라 개조된 자유주의만이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 모두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는 내용의 연설문 "나는 자유주의자인가?"를 낭독하기도 했다.[* 출처: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멜스키 저)'.] 케인스는 당시 보수 진영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참신한 수단과 볼셰비즘(레닌주의)을 구별할 능력조차 없다고 혹평했고, [[사민주의]] 세력은 정의감은 인정하지만 계급투쟁이 일어날 경우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지 못하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당시 노동당이 실행 가능한 통치 철학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한때는 자유당, 노동당의 연립정부를 염원하기도 했으며(지지층이 꽤 겹쳤다), 이런 연대를 위한 행동 강령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당이 제대로만 한다면 인류의 진보를 위한 가장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하며 매력을 느낀 것. 실제 케인스는 엘리트 계층 출신이었고, 인명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남작위까지 가진 귀족이었다. 때문인지 아래 문장에서도 보듯 계급관 등 특정 부분은 오히려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보수적인 엘리트주의자였다. 그는 만약 민주주의에서 엘리트가 배척당한다면 대중들이 조작이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How can I accept a doctrine which sets up as its bible, above and beyond criticism, an obsolete text-book which I know to be not only scientifically erroneous but without interest or application for the modern world? How can I adopt a creed which, preferring the mud to the fish, exalts the boorish proletariat above bourgeois and the intelligentsia who, whatever their faults, are the quality in life and surely carry the seeds of all human advancement? Even if we need a religion, how can we find it in the turbid rubbish of the red bookshop? It is hard for an educated, decent, intelligent son of Western Europe to find his ideals here, unless he has first suffered some strange and horrid process of conversion which has changed all his values.[br][br]어떻게, 과학적으로 틀렸을 뿐만 아니라 흥미도 현대 세계에의 실용적 가치도 없는 [[자본론|한물간 책]] 따위를, 그 한심한 교리를 어떤 비평을 초월하여 성경처럼 떠받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촌티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 계급(여러 오점을 제쳐 두더라도 결국 삶의 질을 높여주었으며, 인류 발전의 밑바탕이 될 계급들)보다 높게 보라는, 물고기보다 흙탕물을 선호하라는 그런 한심한 교리를 받아들이란 말인가? 설령 우리에게 어떤 신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빨간 서점의 혼탁한 쓰레기 속에서 찾을 것인가? 서유럽의 교육받고 품위 있으며 지적인 어떤 젊은이가 이런 곳에서 이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젊은이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어떤 지독한 종교적 개종에 시달리지 않는 한 말이다.[br]- Keynes, John Maynard (1931). Essays in Persuasion 케인스는 진보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와 [[지식인]] 계급보다 교양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찬양하는 신조에 거부감을 표했다. 그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에서 유산계급이 문화를 선도해가는 것이 맞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는 무산계급도 환경의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문화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태생적 우월성을 주장하던 일부 보수적 생물학자들의 논쟁에 반기를 표했다. 공산주의도 비판은 했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소유욕에 대한 인식 변화에 끼친 영향은 놀라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오늘날 그는 진보 경제학의 대두처럼 평가받지만, 상기했듯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선 비판적인 그였기에 그의 경제 사상도 사회주의적 평등 개념보단 유효 수요를 끌어올림으로써 어떻게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시켜 경기를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냐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그에 따라온 복지 개념은 유효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고, 이런 유효 수요 창출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되 정부가 가계를 지원하든 기업을 지원하든 그건 핵심사안은 아니었다. 물론 현실에선 둘 다 지원하는 형태가 되는게 당연했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 입장에서 보자면 케인스는 오히려 일부 계획 경제 도입 등 자기들 이론과 우연히 겹치는 부분을 잘 이용해 사회주의 세력을 견제하고 자본주의를 튼튼하게 먹여살린 웬수일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는 거의 멸종된 상태긴 하다만. 한편, 본인 스스로의 집산주의적 정부개입 옹호와 후대의 좌파 학자들이 케인스의 발언을 많이 인용한 탓에 일부 일반인들은 케인스를 공산주의 인사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특히 신자유주의가 부상할 당시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케인즈주의가 자주 소환되다보니 더 그런 측면도 있었다.], 보면 알다시피 케인스는 어디까지나 반마르크스, 친자본주의적 목적성을 가지고 있던 경제학자였다. 결국 케인스경제학을 요약하면 '''“단기에 시장은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케인스주의]]를 [[수정자본주의]]로 번역한 것이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극단적인 [[합리적 기대]]를 가정하거나 오스트리안 학파가 아닌 한, 이 명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주류경제학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정부개입을 얼마나 옹호할건지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단기’의 개념, 그리고 불완전성의 정도 등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실 새케인지언 사이에서도 [[그레고리 맨큐]]와 [[폴 크루그먼]]처럼 정부 개입에 대한 선호 여부는 좀 갈리는 편이다.] 즉,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그가 시장의 완전성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오늘날 주류경제학 대부분을 좌파라고 하는 말이 된다. 반대로 '시장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이유로 일부 좌파 진영에서 케인스를 추켜세우며 우파 진영을 비웃는 것 역시 오늘날 와선 부질없는 얘긴게,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비주류가 된 것처럼 무한정 자유방임주의 역시 답이 아니라는건 이미 오늘날 대다수 우파 세력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 경제학은 [[케인즈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그의 경제 업적은 오늘날 대다수 좌우 진영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